AP통신에 따르면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온실가스가 공중보건과 복지를 해친다고 본 과학적 판정을 취소했다. 이 판정은 2009년 마련돼 연방정부의 기후 규제에 법적 근거를 제공해왔다. EPA는 자체 검토를 거쳐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으며, 세부 근거와 후속 절차를 제시했다.
이번 취소는 전력 부문 배출 기준, 자동차 배출·연비 규정, 산업체 배출 관리 등 광범위한 정책의 정당성에 직접 영향을 준다. 다만 규정이 곧바로 효력을 잃는 것은 아니다. 관련 규칙이 각각의 근거와 절차를 갖고 있어, 조항별로 법정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주정부와 환경단체는 소송을 예고했고, 산업계도 대응 전략을 모으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2007년 판결에서 EPA가 온실가스의 위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09년 ‘위해성 판정’이 확정됐고, 이후 다수의 기후 규제가 이 판단을 토대로 설계됐다. 그동안 하급심 법원은 해당 판정의 절차와 기록을 대체로 인정해왔다. 이번 조치는 그 토대를 되돌리는 시도여서, 사법부 판단이 거듭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행정부가 행정절차를 통해 과학적 기록을 다시 쓰고 규제 방향을 바꾸는 것은 미국식 정책 경쟁의 전형이다. 정권 교체 때마다 ‘규칙 만들기-소송-재설계’로 이어지는 장기전이 반복된다. 과학적 합의와 규제의 적합성을 둘러싼 논쟁이 법정 기록과 공청회, 규제영향분석서로 세밀하게 축적되고, 정치적 공방은 그 문서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국 독자에게 이 소식이 흥미로운 이유는, 정책의 목표치보다 ‘법적 근거 문서’를 정면으로 겨냥하는 미국 정치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회 입법을 통해 큰 틀을 조정하고, 행정부는 그 틀 안에서 기준을 바꾸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미국은 행정기관의 과학 판정 자체를 정치·법률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전장으로 삼는다. 이 차이는 국내 여론과 미디어 환경에도 시사를 준다. 국내 기후 논쟁 역시 숫자 경쟁을 넘어, 근거 문서의 작성 절차와 데이터 검증을 둘러싼 ‘문서 전투’가 더 전면에 부상할 수 있다.









